카테고리 보관물: 독서

영원의 아이

유년기의 상처가 나머지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려낸 작품이다.

유키, 쇼이치로, 료헤이는 각각 부모로부터 비롯된 상처를 입고 소아 정신과 병동에서 생활하게 된다. 유키가 입소한 첫날, 그들은 운명처럼 서로를 알게 되고, 차차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병원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각자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그 후로 서로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17년 후 각각 간호사, 변호사, 경찰이 되어 재회한다. 세 명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오던 그들은 재회하면서 또 다른 사건들을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사건과 전말이 조금씩 드러나게 된다.

이 책은 유년 시절과 현재의 시점이 한 챕터씩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뒤로 갈수록 조금씩 그 사건의 진실과 전말이 밝혀지는 구성이라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상과 하로 두 권의 책으로 나눠져 있고, 각각 720쪽, 848쪽으로 상당히 많은 분량을 자랑하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이야기 전개가 빨라서 지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책엔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과 부모에게 거는 기대, 그리고 부모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느끼는 감정과 경험들이 잘 반영돼 있어서 느끼는 바가 많다. 부모도 아이를 키우면서 나름의 어려움과 힘든 점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사실 아이가 진정 바라는 것은 먼곳에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안정된 부모의 삶이 아이의 삶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그것이 아이가 자라나는 자양분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주로 주목한 건 아이와 부모의 관계, 주인공이 상처를 극복해내는 과정 따위였지만 이 밖에도 이 책에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갖가지 사회 구조적인 문제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도 비친다. 아래 내용은 출판사 서평에서 발췌.

원고지 5천 매에 달하는 묵직한 두께만큼이나 비장한 이 작품은 현대 사회의 ‘아동 학대’와 ‘가족 붕괴’에 주목하고 있지만, 그것이 단순히 가정의 비극이나 슬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세계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어가는 개인의 역사가 끝없이 이어져, 자신과 얽혀 있는 사회에 어떤 영향을 어떻게 끼치고 받는지, 그로 인하여 이 세계가 어떻게 성립되는지를 이 작품은 보여 주고 있다.

눈치 보는 나, 착각하는 너: 나보다 타인이 더 신경 쓰이는 사람들

각종 사회심리학 관련 연구를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운 주제별로 정리했다. ‘하드코어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될 만한 부분들을 사회심리학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각종 연구를 통해 인간은 왜 이렇게 생겨먹은 동물이고, 어떻게 해야 타인과의, 그리고 심지어 나와의 관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삶을 영위하는 모습들은 서로 다를지라도 사람이라는 동물은 결국 ‘사회적’ 동물이기에 타인과의 권력 관계나 역학에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쏟을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그것을 관통하는 연구 결과를 풀이하고, 결국 좀 더 행복해지고 건강한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방법을 모색해서 알려준다. 그래서 나 자신이나 타인과의 관계가 힘들거나 부담스러운 분들, 거듭되는 대인관계 실패에 지친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게다가 사회심리학을 단순히 심리 테스트나 성격 테스트처럼 가볍게 여겼던 분들이라면 더더욱 읽어봐야 할 책이다. 생각보다 사회심리학이라는 분야는 우리의 현실이나 삶과 맞닿아 있고, 좀 더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누리는 데 보탬이 될 만한 구석을 많이 품고 있으니 말이다.

파이썬 코딩의 기술

대체로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과 API에 익숙해지고 나면 어떻게든 기능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당 프로그래밍 언어답게, 그 언어스럽게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연어도 마찬가지지만 어휘와 문법만 익힌다고 해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언어로 사고하는 법을 익히고 이미 풍부하게 자리 잡고 있는 숙어나 표현 패턴 등을 체화해야 비로소 그 언어를 유려하게 구사할 줄 아는 것이다.

어떤 프로그래밍 언어를 익힐 때는 맨 먼저 입문서를 본다. 해당 언어의 철학과 배경, 문법, 어휘, 구조 등을 익히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본격적으로 그 언어를 이용해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작성하게 되는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기능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 있게 될 수는 있어도 그 언어답게 구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서 이 부분에서 바로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가 생기고 만다. 프로그래밍 책 가운데 ‘이펙티브(effective)’라는 이름이 붙은 시리즈가 대체로 이 부분을 메꾸는 역할을 하는 책이다.

이번에 나온 『파이썬 코딩의 기술』은 제목에 ‘이펙티브’라는 표현이 붙지는 않았지만 원서 제목인 ‘Effective Python’이 붙어 있는 진짜 이펙티브 시리즈 책이다. 그래서 책의 구성도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파이썬을 쓸 때 유용하게 참고할 수 있는 내용들을 각 요소별로 조언 형태로 59가지나 담고 있다. 파이썬 코드를 작성하다가 ‘이렇게 짜는 게 파이썬답게 짜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 때마다 이 책을 들춰보면 파이썬스럽게 코드를 작성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단순히 기능하기만 하는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유창한 코드로 작성된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싶은 분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