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보관물: codingnuri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편

재작년부터 워낙 유명했던 책이라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서 1권을 사놓고선 이제야 읽었다. 원래 지대넓얕이라는 제목으로 운영 중이었던 팟캐스트의 내용을 정리해서 책으로 펴낸 듯하다.

현대 사회는 정보와 지식이 범람하는 시대이고 각 분야별로 전문화된 지식 체계가 있어서 섣불리 전체를 조망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점에 역점을 두고 시대와 사회를 관통해서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는 각 분야별로 짧게짧게 핵심적인 주제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앞에서 다룬 내용을 적절히 반복함으로써 점진적으로 이해한 바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게 해준다. 그런 부분을 보면서 저자가 독자를 세심하게 배려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가장 크게 얻은 소득은 이 책에서 설명하는 틀을 통해 복잡다단한 이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나 메커니즘은 좀 더 심플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 역사, 사회, 정치, 윤리가 서로 단절되지 않은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막연하게나마 각 분야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해왔지만 정확히 어떤 이유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설명하자면 어려웠을 테지만 이제는 조금이나마 관계의 실타래를 더듬어 나갈 만한 시각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내가 견지하는 정치/경제적 관점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다음 책은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 편’인데 조만간 마저 주문해서 읽어보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따로 출판사를 차려서 책을 냈다고 했는데, 그 첫 책이 <시민의 교양>이라는 책이다. 이 책도 조만간 주문해서 읽어봐야겠다.

BBK의 배신

김경준 – 유학생, MBA 지망생, 금융인의 필독서의 리뷰를 보고 재밌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주문해서 읽었다. 김경준 씨는 누구나 알다시피 BBK로 알려진 인물이다. 단순히 이 책에 BBK 관련된 내용만 있었다면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겠지만 PPSS 리뷰를 보면 그 외의 내용도 많이 있어서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책을 읽어본 결과 PPSS 글의 제목처럼 이 책은 정말 BBK 사건에 관심이 있는 분들도 그렇지만 유학생, MBA 지망생, 금융인이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이자면, 책에 나온 내용을 100% 믿거나 받아들이기는 힘들 수도 있겠지만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다고 본다면 한국 사회의 병폐와 부조리가 어떤 식으로 한 개인을 파국으로 몰고갈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1부와 3부에서는 제목에 나온 것처럼 BBK 사건에 대해 아주 자세히 다룬다. BBK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한 김경준 씨가 쓴 책이기에 BBK 사건의 핵심 쟁점과 사건 개요, 과정, 결과를 대략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사건 구조(여러 회사가 나오고 관계가 복잡하고 전문적인 내용이라…)가 복잡해서 잘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대략적으로 뭐가 문제였고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관련 정치 공작의 배경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부에서는 재미교포 2세의 삶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미국 한인사회의 분위기라든가 미국 시스템, 정서 같은 부분들이 흥미로웠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능력 있는 수험생이나 그런 수험생을 둔 부모라면 참고할 만한 내용이 나온다. 이 책을 보니 한번 도전해 볼만 일이 아닌가 싶다(특히 살벌한 한국 사회에서 자녀를 키우기에 부담이 느껴지는 분이라면 자녀를 위해서라도 한번 유학을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 밖에도 미국의 총기 규제와 사법 제도, 하버드 학벌의 진실, 코넬 대학의 이야기, 미국에서 소수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본질 등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이 나온다. 책을 읽다 보니 <삼성을 생각한다> 같은 책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김경준 씨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도전하고 성취해온 일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지금 감옥에 있는 것이 좀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얼른 사회로 복귀해서 행복한 삶을 이어나가시길(이 책의 두 번째 책도 써주셨으면).

영원의 아이

유년기의 상처가 나머지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려낸 작품이다.

유키, 쇼이치로, 료헤이는 각각 부모로부터 비롯된 상처를 입고 소아 정신과 병동에서 생활하게 된다. 유키가 입소한 첫날, 그들은 운명처럼 서로를 알게 되고, 차차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병원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각자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그 후로 서로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17년 후 각각 간호사, 변호사, 경찰이 되어 재회한다. 세 명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오던 그들은 재회하면서 또 다른 사건들을 겪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과거의 사건과 전말이 조금씩 드러나게 된다.

이 책은 유년 시절과 현재의 시점이 한 챕터씩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뒤로 갈수록 조금씩 그 사건의 진실과 전말이 밝혀지는 구성이라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 상과 하로 두 권의 책으로 나눠져 있고, 각각 720쪽, 848쪽으로 상당히 많은 분량을 자랑하지만 문장이 간결하고 이야기 전개가 빨라서 지루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책엔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과 부모에게 거는 기대, 그리고 부모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느끼는 감정과 경험들이 잘 반영돼 있어서 느끼는 바가 많다. 부모도 아이를 키우면서 나름의 어려움과 힘든 점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사실 아이가 진정 바라는 것은 먼곳에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안정된 부모의 삶이 아이의 삶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그것이 아이가 자라나는 자양분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주로 주목한 건 아이와 부모의 관계, 주인공이 상처를 극복해내는 과정 따위였지만 이 밖에도 이 책에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갖가지 사회 구조적인 문제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도 비친다. 아래 내용은 출판사 서평에서 발췌.

원고지 5천 매에 달하는 묵직한 두께만큼이나 비장한 이 작품은 현대 사회의 ‘아동 학대’와 ‘가족 붕괴’에 주목하고 있지만, 그것이 단순히 가정의 비극이나 슬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세계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태어나서 성장하고 죽어가는 개인의 역사가 끝없이 이어져, 자신과 얽혀 있는 사회에 어떤 영향을 어떻게 끼치고 받는지, 그로 인하여 이 세계가 어떻게 성립되는지를 이 작품은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