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보관물: 독서

빌뱅이 언덕

『몽실 언니』『강아지똥』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9년이 지났다. 평생 결핵이라는 병마와 씨름하시면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겨운 삶을 살다 가셨지만 언제나 선생님의 동화에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까지 그 시대에 생과 사를 오가는 고난을 겪으셨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동화로써 다음 세대에게 큰 유산을 남겨주신 권정생 선생님의 글이기에 큰 울림이 있다.

이 책은 선생님이 곳곳에 기고하거나 쓰신 글 중에서 선별해서 엮은 것이다. 선생님이 작고하신 후 5주기를 맞아 출간된 것이라 한다. 그동안의 삶의 궤적과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글들을 읽으면서 생명경시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는 세상의 변화를 안타까워 하셨을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책 뒤표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는데, 이 책의 성격과 선생님의 면모를 잘 그려준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맑은 목소리로”

삶ㆍ문학ㆍ사상이 일치한 작가 권정생의 산문

오픈 소스 ANTLR4 입문

모든 컴퓨터 책이 그렇듯 어떤 언어나 프로젝트의 창시자가 쓴 책은 믿고 봐도 된다는 게 정설이다(물론 번역서는 번역의 품질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이번에 ANTLR 프로젝트의 창시자인 Terence Parr가 쓴 『The Definitive ANTLR 4 Reference』의 번역서가 나왔다. 자바 기반의 파서 제너레이터인 ANTLR 프로젝트는 그동안 자바 개발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프로젝트다. ANTLR은 나도 잠깐 3 버전을 SQL 비슷한 문법을 파싱하기 위해 쓴 적이 있고, 역시 Terence Parr가 만든 템플릿 엔진(ANTLR 내에서도 사용한다)은 그 이후로도 종종 쓴 적이 있다. 컴퓨터 공학 전공이 아니라서 컴파일러 및 프로그래밍 언어론 같은 수업을 들은 적이 없다 보니 처음엔 ANTLR을 사용하기가 어려웠는데, 이 분야에 관심이 있거나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갖춘 분이라면 ANTLR을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에게 ANTLR의 장점은 ANTLRWorks라는 GUI 도구 및 인텔리J IDEA나 이클립스용 플러그인이 있어서 문법을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처럼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주제의 책이 나와서 반갑다. 문자열 파싱이나 문법 처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읽어볼 만한 책.

댓글부대 – 장강명

댓글부대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읽은 장강명 작가의 작품.

간결한 필체와 빠른 이야기 전개에 힘입어 주말에 경쾌하게 읽어내려간 작품.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국정원 대선개입의혹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사이버 여론을 조작하는 일을 하는 세 젊은이를 주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세 젊은이 중 한 명인 ‘찻탓캇’이 기자와 인터뷰하고 중간중간 진행상황을 묘사하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참고로 각 장의 제목은 히틀러의 선전장관인 요제프 괴벨스의 어록(출처는 분명하지 않다)에서 딴 것이라고.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소재로 쓰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미 한국에 뿌리 깊게 내리고 있는 인터넷 문화와 저변에 깔린 인간의 심리나 역학을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모티프로 삼고 있기에 현실감이 높고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인터넷이라는 공간도 처음에는 시대의 긍정적 변화와 변혁을 가져오리라 기대됐던 매체였지만 결국 도구는 도구일 뿐이고, 칼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또 하나의 교묘하고 정교한 조작과 선동의 장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오히려 인터넷이라는 공간은 오프라인에 비해 개개인 간의 관계가 간접적이고 수평적인데다 메시지 전파가 쉽고 파급력이 더 크기 때문에 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이버 공간과 현실 세계 간의 경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는 내용도 그렇지만 이 책의 소재로 채택된 내용들 또한 현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어서 더 흥미진진했다. 작가가 언론사에서 근무했었기 때문에, 그리고 전작과 더불어 한국사회의 민낯을 잘 드러내고 한국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감없이 표현하는 작가이기 때문에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