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보관물: codingnuri

어떤 아이라도 부모의 말 한마디로 훌륭하게 키울 수 있다

어떤 아이라도 부모의 말 한마디로 훌륭하게 키울 수 있다
아델 페이버,일레인 마즐리스 공저/김희진 역

코딩호러, 제프 앳우드가 How to Talk to Human Beings에서 소개한 책이다. 육아에 관한 책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권장하는 기법(?)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이들과의 대화에 유용하다고 설명한다. 번역서는 절판된 지 오래돼서 예전에 구입해둔 중고책으로 읽었는데, 1,000원에 불과한 중고책도 있어서 자녀나 대화법이 궁금한 분들이라면 한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한번 구입해서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다.

근래에 출간된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과도 궤를 같이하는 책이긴 한데, 감정코칭 책에 비해 좀 더 가볍게 읽을 수 있고, 중간중간 삽화도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서 부모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양한 상황별 예시를 들고 있고 그때그때의 대처 요령을 알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부모가 그럴 때마다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를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관계를 개선하고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 그런 이유에서 코딩호러가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일지도.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면 아이에게 큰 힘이 된다. 또한 아이가 자신의 내면과 만날 기회가 생긴다. 아이가 자신이 마음 속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분명히 알게 된다면 그러한 감정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p.41)

하지만 대다수의 아이들에게 “왜”라는 질문은 오히려 풀어야 할 문제만 더해줄 뿐이다. 애초의 고민거리에다, 이제는 고민하는 이유를 분석해서 타당한 이유까지 설명해야 하는 과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p.43)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들춰내 야단치면 혼자 잘할 수 있는 일도 더 못하게 된다. 누군가 당신에게 문제를 설명해 주기만 한다면 그 문제에 집중하는 게 훨씬 쉬워진다. (p.78)

아이들은 훈계나 설교, 기나긴 설명을 듣기 싫어한다. 아이들에게는 짧게 말할수록 기억에 오래 남고 효과도 더 좋다. (p.83)

재빨리 사과하는 아이는 그만큼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한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그런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p.150)

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김두식 교수님이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엮은 책. 일종의 내부고발서 성격이 짙고, 특히나 그 대상이 대한민국 법조계라는 점에서 더 큰 가치가 있다. 판사, 검사, 변호사부터 브로커나 변호사 사무실 직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한국 법조계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맨 먼저 우리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세계라는 점에서 법조계를 바라본다. 한 인간의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큰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법고시 패스가 주는 의미에서부터 그들만의 리그에 속한 사람들끼리 만들어진 ‘가족’적인 면면들을 낱낱히 들여다본다. 법이라는 공적 서비스가 일반 개개인에게 효과적으로 제공되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선한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법’ 체계가 일부 소수의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 때문.

다양한 법조계 종사자들의 인터뷰이다 보니 결국 자연인으로서는 한낱 개인에 불과한 판사나 검사, 변호사들의 고충이나 고민거리들도 자주 나온다. 청탁이라든가 사회 및 구조적으로 강제되는 ‘원만함’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개인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그것이 종합적으로 조직, 체계,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다. 가령 판사 시스템에 대해 다른 나라와 비교한 내용도 조금 나오기도 하는데, 좀 더 합리적이고 바람직한 법 체계의 변화를 위해서나 궁극적으로 공적 서비스로서의 ‘법’이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서도 법조계 전체가 이 책에서 거론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고 개선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같은 저자의 전작인 헌법의 풍경에서는 법 자체와 사회 시스템과의 연관성에 대해서 주로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책 성격상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보니 법조계 종사자 자체와 시스템, 조직과의 연관성에 대해 주로 다루고 있다.

채식주의자

올해의 화제 소설,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영혜라는 평범하디 평범한 인물이 채식을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소설이다. 처음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이라는 세 편의 단편 모음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각각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 관점에서 사건이 흘러가는 구성이다.

‘채식주의자’에서는 평범한 아내가 채식주의자로 변모하면서 그녀를 둘러싼 세계와 충돌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육식에 길들여진 세상을 거스르는 것은 극복하기 힘든 과정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단순히 채식을 한다는 이유로 주인공에게 폭력적이고 강박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일에 이토록 잔인하게 구는 것을 보면 인간이란 다수가 만들어둔 어떤 ‘체제’를 거스르는, 무리를 이탈하려는 자에게 언제든지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가련한 존재인가 싶기도 하다.

‘몽고반점’은 영상 예술가인 영혜의 형부가 아내에게서 영혜에게 아직 몽고반점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체제를 욕망하고, 결국 그 과정에서 파국을 맞게 되는 내용이다.

‘나무불꽃’은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동생과 남편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목격한 후 영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남편은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인혜에게는 부양해야 할 동생과 아들이 있기에 삶을 꾸역꾸역 꾸려 나간다.

소설의 첫 구절은 영혜의 남편이 영혜와의 첫만남에서 그녀를 묘사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개성있어 보이기를 두려워하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 평범한 보통 사람이 앞으로 겪을 특별한 일들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