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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아몬드 (20만부 기념 특별 한정판)

아몬드 (20만부 기념 특별 한정판)

손원평

‘알렉시티미아’라는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병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의 성장기.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고난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저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범하게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럽고 고맙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몰랐는데 아이가 생긴 후에는 세상에 감사한 일들이 많아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가령 동감하기는 힘들지 모르겠지만 전쟁의 위험처럼 평소에는 전혀 생각할 일이 없는 것에도 다행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아내하고도 종종 이야기하지만 별다른 위험 없이, 무탈하게, 건강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확률 낮은 일인지, 지금처럼 사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에 대해 함께 입을 모은다.

올해 언젠가, 집안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흔히 이야기하는 ‘사이코패스’인 가족의 경험담을 읽을 적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내용이 생각 났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감정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윤리 기준을 일일이 가르쳐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지극히 당연한 거지만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든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된다, 라는 것 같은.

아몬드에서도 이와 비슷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아몬드의 주인공은 지속적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하고 차별을 당한다. 그런데 오히려 주인공이 감정을 제대로 느끼기가 힘든 것이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다행스럽다고 해야 하나. 괴롭힘이나 따돌림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일이 잦아서 차라리 이런 점에서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책의 중반부부터는 진정한 교우관계도 만들고 조금씩 감정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처가 있는 여린 친구 곤이와 자신의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도라를 통해 새로운 관계와 감정들을 접해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후반부는 설정이나 흐름이 조금 거칠긴 하지만 따뜻한 결말로 마무리되어 책을 읽으면서 느껴졌던 안타까움이 덜어져서 홀가분했다.

청소년 소설이긴 하지만 청소년 소설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 아이들의 부모로서도 동감할 만한 부분이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이 태어나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이 책 덕분에 좀 더 특별해지는 것 같다.

채식주의자

올해의 화제 소설,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영혜라는 평범하디 평범한 인물이 채식을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소설이다. 처음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이라는 세 편의 단편 모음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각각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 관점에서 사건이 흘러가는 구성이다.

‘채식주의자’에서는 평범한 아내가 채식주의자로 변모하면서 그녀를 둘러싼 세계와 충돌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육식에 길들여진 세상을 거스르는 것은 극복하기 힘든 과정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단순히 채식을 한다는 이유로 주인공에게 폭력적이고 강박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일에 이토록 잔인하게 구는 것을 보면 인간이란 다수가 만들어둔 어떤 ‘체제’를 거스르는, 무리를 이탈하려는 자에게 언제든지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가련한 존재인가 싶기도 하다.

‘몽고반점’은 영상 예술가인 영혜의 형부가 아내에게서 영혜에게 아직 몽고반점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체제를 욕망하고, 결국 그 과정에서 파국을 맞게 되는 내용이다.

‘나무불꽃’은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동생과 남편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목격한 후 영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남편은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인혜에게는 부양해야 할 동생과 아들이 있기에 삶을 꾸역꾸역 꾸려 나간다.

소설의 첫 구절은 영혜의 남편이 영혜와의 첫만남에서 그녀를 묘사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개성있어 보이기를 두려워하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 평범한 보통 사람이 앞으로 겪을 특별한 일들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