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적들: 정의는 때로 천천히, 하지만 반드시 온다

희대의 사건들을 정의라는 관점에서 정리한 책이다. 탈주범 신창원부터 전두환 동생 전경환의 무전유죄, 유전무죄, 18대 대선의 국정원 게이트 등등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어서 두루 훑어보기 좋았다. 갖가지 사건들이 일어나도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들은 내용은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사건의 경과나 결과를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데 이 책에서는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고 있어서 사건의 쟁점이나 핵심을 파악하기에 수월했다.

이 책에서는 주로 ‘정의’라는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기에 단순히 범죄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가치 판단을 요구하고 있어서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한국 사회가 정의롭지 않은 구석이 많다는 사실은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사건/사고에 대한 언론 보도만 보더라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고인 물이 썩지 않도록 끊임없이 물이 순환하도록 감시하는 것이리라. 이 책의 부제처럼, ‘정의는 때로 천천히, 하지만 반드시 온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계속 주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의 출간 시점이 2014년이라서 국정원 게이트 사건처럼 점차 진상이 밝혀지고 있는 사건들도 있다. 사건들의 전개나 결과에 앞서 미리 배경지식 차원에서 읽어봐 두는 것도 좋겠다.

82년생 김지영

82년생 김지영

한국 여성 수난사. 이 책의 주인공인 김지영 씨보다 훨씬 더 황당무계한 일들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오늘도 82년생 여자 김지영 씨의 수난사는 계속 반복된다는 점에서 좌절스럽다. 이 책의 내용에 따르면 이미 나는 ‘한국사회’에서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태어날 때부터 프리미엄을 갖고 태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탓에 82년도에 태어난 김지영 씨가 겪은 일들의 대부분은 내게는 해당하지 않는 일이었다.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다른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해야 할까. 그가 겪은 일들을 만약 내가 ‘여성’으로서 겪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섬찟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한편으론 비겁하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동시에 험난한 한국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82년생 김지영 씨들에게 미안함이 들기도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페미니즘’이라든가 ‘여혐’ 같은 키워드가 계속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사회가 좀 더 앞으로 나아간다는 신호로 볼 수도 있겠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다만 그 과정에서 예기치 못하게 일어나는 문제나 사건/사고에 대해서는 걱정이 앞서지만).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나도 특별한 이해나 식견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무엇이든 차별받고 억압받는 존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다.

개인주의자 선언

중앙일보에 쓴 칼럼으로도 유명한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다. 이 책에서는 국가주의, 집단주의, 가족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합리적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담을 담담하게 정리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사회에서는 개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사회라는 걸 어렸을 때부터 겪게 되다 보니 이런 책이 나온 게 무척 반갑고 신선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갖가지 병폐 현상의 근원을 파헤치다 보면 개인주의의 부재가 한몫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개인이 행복할 리가 없고,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은 사회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잘못 이해하고 있는 장유유서의 유교문화, 상명하복식의 군대문화, 군대문화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조직문화 속에서 개인은 각자의 행복을 오롯이 추구하기가 힘들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문화 속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지켜지기 힘들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현대 한국사회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내 나름대로 생각해 왔던 것들을 이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내가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치열하게, 그리고 더욱더 폭넓게 고민한 산물이라는 점에서 이 책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