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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올해의 화제 소설,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인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영혜라는 평범하디 평범한 인물이 채식을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소설이다. 처음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이라는 세 편의 단편 모음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각각 영혜의 남편, 영혜의 형부, 영혜의 언니 관점에서 사건이 흘러가는 구성이다.

‘채식주의자’에서는 평범한 아내가 채식주의자로 변모하면서 그녀를 둘러싼 세계와 충돌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육식에 길들여진 세상을 거스르는 것은 극복하기 힘든 과정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단순히 채식을 한다는 이유로 주인공에게 폭력적이고 강박적인 태도를 보이는 모습을 보이는데,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일에 이토록 잔인하게 구는 것을 보면 인간이란 다수가 만들어둔 어떤 ‘체제’를 거스르는, 무리를 이탈하려는 자에게 언제든지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가련한 존재인가 싶기도 하다.

‘몽고반점’은 영상 예술가인 영혜의 형부가 아내에게서 영혜에게 아직 몽고반점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체제를 욕망하고, 결국 그 과정에서 파국을 맞게 되는 내용이다.

‘나무불꽃’은 영혜의 언니인 인혜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동생과 남편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목격한 후 영혜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남편은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인혜에게는 부양해야 할 동생과 아들이 있기에 삶을 꾸역꾸역 꾸려 나간다.

소설의 첫 구절은 영혜의 남편이 영혜와의 첫만남에서 그녀를 묘사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개성있어 보이기를 두려워하는 듯한 인상을 줄 만큼 평범한 보통 사람이 앞으로 겪을 특별한 일들을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은 구두를 신고 그녀는 내가 기다리는 테이블로 다가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가냘프지도 않은 걸음걸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