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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적들: 정의는 때로 천천히, 하지만 반드시 온다

희대의 사건들을 정의라는 관점에서 정리한 책이다. 탈주범 신창원부터 전두환 동생 전경환의 무전유죄, 유전무죄, 18대 대선의 국정원 게이트 등등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어서 두루 훑어보기 좋았다. 갖가지 사건들이 일어나도 언론 보도를 통해 전해들은 내용은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사건의 경과나 결과를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데 이 책에서는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고 있어서 사건의 쟁점이나 핵심을 파악하기에 수월했다.

이 책에서는 주로 ‘정의’라는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기에 단순히 범죄 자체만이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가치 판단을 요구하고 있어서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한국 사회가 정의롭지 않은 구석이 많다는 사실은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사건/사고에 대한 언론 보도만 보더라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고인 물이 썩지 않도록 끊임없이 물이 순환하도록 감시하는 것이리라. 이 책의 부제처럼, ‘정의는 때로 천천히, 하지만 반드시 온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계속 주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의 출간 시점이 2014년이라서 국정원 게이트 사건처럼 점차 진상이 밝혀지고 있는 사건들도 있다. 사건들의 전개나 결과에 앞서 미리 배경지식 차원에서 읽어봐 두는 것도 좋겠다.

얼굴 – 요코야먀 히데오

오랜만에 읽은 일본소설. 남성 중심 조직인 일본 경찰 내에서 여성 경찰로서 근무하는 미즈호의 이야기. 남성 중심의 경직된 조직에서 여경이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를 조명한 작품이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대체로 이 같은 조직 문화는 비슷한 구석이 많은 것 같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경찰이 사건을 처리하는 방법이라든가 조직 생리, 일본 경찰 시스템 같은 부분을 흥미롭게 읽었다. 가령 방화사건의 경우 방화범은 대다수 자신이 붙인 불이 번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즐거움을 얻는 쾌락범이어서 구경꾼들 무리에 섞여 범죄현장을 보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경찰들이 구경꾼들의 사진을 찍어둔다는 점 같은 부분 말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미즈호가 사건에 착수해서 번뜩이는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거나 돕거나 간간이 실패하는 줄거리로 구성돼 있다.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범죄자의 몽타주를 그리는 직무를 하다가 조직논리에 휘둘려 상처를 받은 후 휴직했다가 다시 복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미즈호는 추리를 통해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배경이나 진실을 밝히고 마는데, 나는 추리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이야기가 흘러가는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지만 그 과정도 흥미로웠다. 이런 장르의 책은 거의 읽어본 적이 없지만 아마 이런 부분에 독자들이 열광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첫 출발이 좋기에, 작가의 다른 작품인 『종신검사관』『동기』도 읽어봐야겠다(둘 다 절판인 건 함정).